삼성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이야기

그대여 (육성)응원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침묵합시다.

큐리오32 2022. 10. 13. 00:18

이전 글에서 스쳐가듯 언급했던 시즌권 기념구다. 둘 다 오승환 선수 싸인 받았다고 자랑하는거 맞다. 하지만 자랑질이나 하려고 이 이야기를 또 꺼낸건 당연히 아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이 공들은 코로나 시절에 시즌권을 유지해줘서 받았다고 직전 글에서 언급했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지난 문자를 찾아보고 떠올랐다. 파이널보스 기념구가 시즌권 선물이고, 400세이브 기념구는 원래 별도로 한정판매한 상품을 시즌권 회원에게 줬었다. 또한 지역경제 살리기의 일환인지 5만원짜리 서문시장 바우처도 줬었다. 덕분에 아버지랑 10만원 어치 서문야시장 뷔페(?)를 즐겼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번 주제는 코로나 시절 직관 이야기다. 이야기는 2019년 오승환 선수도 복귀선언을 했고 나도 삼성라이온즈 시즌피날레 싸인회에 당첨되며 삼뽕이 풀충전된 그 시점에서 시작한다.


당시 난 난생처음으로 시즌권이란걸 가입하기로 마음먹고 아버지와 금토권을 동반신청했다. 좌석은 블루존 통로쪽. 소심한 성격에 걸맞지 않게 야구장에선 맥주 한 잔 걸치고 목청껏 응원해야 직성이 풀린다. 가끔 육두문자도 날아가지만 그래도 주변에 삼린이가 있으면 취한 와중에도 입단속은 한다. 다른 자리도 가봤지만 역시 내 취향은 블루존이다. 거기다 왠지 2018년 드래프트때 뽑은 1차지명은 1군에서 던지는걸 보아하니 진짜로 성공할 것 같아서, 내년엔 10승 투수가 될 것 같아서 그 신인 이름으로 바로 새삥 대구니폼도 질렀다. 배번은 56번, 이름은 최채흥.

이야기가 또 샛길로 흘렀다. 아무튼 야구장을 간다면 성적이 안좋았던 2019년에도 블루존 통로자리는 시즌권자들의 선예매로 자리잡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난생처음으로 한 시즌을 20번이나 직관갔던지라 이 돈이면 금토 시즌권 사는게 더 낫겠다는 계산이 섰다. 게다가 한번 산 자리는 1년내내 내 지정석이다. 그래서 자리도 열심히 고르고 돈도 입금했다. 여기까진 참 행복했지.

그런 행복을 깬 뉴스 하나.



중국에서 박쥐를 쳐먹었는지 생체실험을 했는지 아무튼 중국이 뭔 짓을 해서 바이러스가 퍼졌댄다. 그리고 그게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댄다. 이 전의 심각한 질병이었던 메르스나 사스 때도 스포츠가 무관중으로 진행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사실 이때까진 그만큼 심각한 질병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하지만 사태는 일파만파 커져갔고 세계사에 남을 거대한 역병이 하필 대구에서 문자 그대로 폭발했다. 물론 언젠간 코로나가 대구에 왔겠지만 굳이 그 시기를 앞당긴 것도 모자라 한국 전역에 퍼뜨리고 대구를 역병의 도시로 만든 신천지 덕에 사태는 엄중해졌고 야구는 문자 그대로 "그깟 공놀이"가 되버렸다. 다시 생각해도 짜증나서 욕 한 번 박겠다. 저 염병할 신천지 새끼들.



야구는 개막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불투명했고 나는 기껏 시즌 기다리며 유니폼도 사고 시즌권도 샀는데 이게 뭔 염병인가 싶었다. 그러다 개막을 했는데 이번엔 무관중이라네? 심지어 언제 관중입장이 될지도 모른댄다. 이정도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염병에 염병을 더하는 이야기다. 야구 개막이라도 한 건 고마운데 야구장에 가지를 못하니 이게 바로 김첨지의 심정인가 싶더라.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드디어 관중입장이 허용되었다. 거리두기로 30% 입장이지만 이것만해도 감지덕지다. 그런데 경기장에서 입을 꾹 닫으랜다. 마스크 끼고도 대화금지에 육성응원도 불가, 음식은 거리두기로 3칸씩 널널하게 띄워앉은 좌석에선 못먹고 정작 불편하게 여러사람이 따닥따닥 붙어있어야 하는 취식테이블 가서 마스크 벗고 먹으랜다. 염병이 계속 염병을 물고 있었다.

처음엔 야구장 가는 것만으로도 좋았지만 선수가 안타를치든 삼진을 잡든, 심지어 홈런이 나와도 입 꾹 다물랜다. 아예 입을 다물게 할꺼면 마스크는 왜씌우는건지, 오히려 좁은 푸드코트에 몰아넣고 침튀기며 밥먹는게 더 위험한건 아닌지, 그리고 삼성 팬들은 규칙 잘 지키고 입 꾹 다물고 박수로 응원하는데 건너편 모 팀 팬들은 올때마다 꼭 육성응원하고 쌍욕푸짐하게 경기장에 박더라. 그런 사람들 제지도 못하고 전광판으로 육성응원금지만 띄우고 앉았으니 오죽했으면 김상헌 응원단장이 열받아서 대놓고 그쪽 응원석에서 육성응원 못하게 엠프 최고데시벨로 올려서 응원가 빵빵하게 틀며 통쾌하게 복수한 일까지 있었다.

이렇게 참 답답하게 응원했던 1년 반이지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게 있다고 혜민플렉스님이 말하지 않았던가? 답답한 와중에도 거리두기의 장점은 생각보다 많았다.


1. 주차공간


삼성 팬들은 잘 알겠지만 라팍의 주차면은 진짜 뭐같이 적다. 오죽하면 허삼영 전 감독도 대놓고 한 소리했다. 그런데 거리두기를 하면 관중이 30%~50%로 줄어든다. 그리고 오는 관중들이 전부 차를 끌고 오는 것도 아니지 않나. 덕분에 라팍이 개장하고 나서 처음으로 주차장이 거지같다는 생각을 잊어버렸던 기간이었다. 물론 관중 100% 입장하는 지금은 얄짤없다. 무조건 2시간 30분 전에는 가야 안전하게 주차한다. 시즌 피날레때는 5시경기인데 2시 10분에 만차되었다. 어떻게 아냐고? 나는 이럴줄알고 1시에 주차했으니까. 심지어 그 시간에도 2층 주차장이 만차여서 지붕없는 3층주차장에 가야했다. 야구때문에 3시간 일찍 집을 나서거나 아예 차를 포기하고 724번 버스에 몸을 실을때마다 그 시절이 그리워지더라.



2. 거리두기로 인한 쾌적함


여러분들의 안구보호를 위해 푸짐한 몸뚱아리는 가렸다. 전형적인 안여돼인 나같은 사람에게 야구장 의자는 참 좁다. 거기에 바로 옆에 누군가 앉아있으면 팔이 닿을까 꽤 신경쓰인다. 거리두기 기간 10%땐 4좌석, 30%땐 2좌석, 50%땐 1좌석을 띄워 앉았다. 덕분에 옆에 사람이 없으니 쾌적하고, 나같이 유니폼들고 응원해야 직성이 풀리는 관종관중은 좌석에 유니폼을 걸어두고 응원할 수 있었다. 당장 위의 사진에서 유니폼이 걸려있는 좌석이 바로 거리두기를 위한 사석(死席)이다. 테이블석도 아닌데 옆 사람 신경안써도 되고 유니폼이나 가방도 걸어두며 야구를 봤던 경험은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여담으로 저 때까진 그래도 본격적인 호구가 되기 전이라 유니폼도 몇개없고 싸인 유니폼은 김상수, 오승환 둘 뿐이었다. 심지어 내가 열렬하게 응원하던 최영진 선수 유니폼에도 아직 싸인을 못받았을때였다. 지금은 15벌 가량의 유니폼에 전부 싸인을 받은 훌륭한 호구가 되었다.(뿌듯)

3. 구단의 색다른 이벤트 시도.
태생부터 라팍은 싸인받기 참 힘든 구단이다. 그나마 라만차와 블루밋이란 행사를 했다지만 전자는 시즌권과 키즈회원 100%라 접근성이 떨어지고 후자는 야구 티켓도 안사고서 싸인받으려고 장사진을 친 무개념들에 행사시간도 정해져있어 참 말이 많았다. 그나마 공식적으로 라팍에서 싸인을 받을 유일한 루트였는데 KBO에서 코로나 확산 방지를 이유로 팬과 선수의 접촉을 막고 아예 리그차원에서 팬서비스를 금지시켰다. 팬들이야 속타지만 안전문제가 있는건 사실이니 뭐 이해는 갔고 삼성도 명분이 있으니 굳이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 삼성이 달라졌다. 팬과 접촉하면 안되면 드라이브 스루로 싸인을 해주면 되지라는 획기적인 발상을 하질 않나, 버린자식이던 구단 공식 유튜브를 활성화해 시범경기와 무관중 응원을 하는 응원단을 고화질로 실시간 중계도 하면서 싸인볼도 뿌리고 랜선 싸인회란걸 열어 카카오 멤버쉽에 가입한 회원들에게 선물도 뿌렸다. 또 21년 시즌 후엔 자선 발야구 대회+싸인회를 열어 시즌 피날레를 대신했었다. 물론 완벽한건 아니고 처음하는 시도답게 시행착오도 참 많았다.


랜선싸인회는 하필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컨디션조절을 해야할 타이밍에 투수조 싸인회를 열어 1차로 욕먹고, 타자조 싸인회는 구자욱-박해민-피렐라가 김헌곤-강한울-김호재-박승규-김지찬으로 아예 바뀌는 참사(?)가 일어나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박해민 싸인볼은 무려 박해민이 LG로 이적하고 2주 뒤에 보내주기까지..


랜선 싸인회는 도저히 실드 못쳐주겠지만 적어도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여러가지 시도를 통해 팬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려던 노력만큼은 정말 좋았다. 특히 드라이브 스루 사인회는 이벤트 진행도 깔끔했고 좋은 추억도 많아서 계속하길 바랐는데 아쉽게도 21년이 마지막이었는지 더이상 열리지 않더라. 드라이브 스루 싸인회 이야기는 에피소드가 길어서 다음에 따로 다루겠다.
맛보기로 이야기 하나만 풀자면 땅땅치킨 드라이브 스루로 받아온 치킨은 그날밤 우리집 제삿상에 고기반찬 대신 올라갔다.



영원할 것만 같던 거리두기 육성금지 시대도 끝이나고 허구연 총재 주도로 마스크만 잘끼면 육성응원도 가능하고 좌석에서 다시 음식섭취도 허용되고, 올 시즌 말미엔 아예 모든 제한이 풀리며 이 때의 답답함도, 생경했던 풍경도, 특별했던 이벤트들도 모두 추억으로 남게되었다. 코로나 시대, 함께해서 더러웠고 제발 다시는 만나지 말자.

덧붙여 글을 쓰기 위해 예전 사진과 글들을 돌이켜보며 아무리 힘든 때에도 지나고보면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고 추억이 남는다는걸 새삼 느꼈다. 본론보다 옆길로 새는 말이 더 많았던 이번 글은 여기서 마무리.